
드라마로, 비행기 추락 사고 후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안데스 설원의 생존자〉(Society of the Snow) 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1972년 우루과이 럭비팀의 비행기가 안데스 산맥에 추락한 후, 72일간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단순한 생존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인간이 극한의 환경 속에서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무엇으로 인간다움을 유지하는지를 묻습니다. 스페인 감독 J.A. 바요나는 이 작품을 통해 감정과 현실의 간극을 밀도 있게 엮어내며, 관객을 한겨울 설원 속으로 데려갑니다.
1972년, 우루과이의 청년 럭비팀이 칠레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는 안데스 산맥 상공에서 조난을 당하고, 대부분의 승객들이 사망하게 됩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혹독한 추위와 고산의 환경, 물과 음식이 전혀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극단적인 생존의 선택을 마주하게 됩니다. 구조의 희망이 완전히 끊긴 순간부터, 이들은 각자의 도덕과 감정을 넘어서 공동체의 생존을 고민하게 됩니다. 죽음을 넘어선 생존, 그리고 그 끝에서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 이어집니다.
설원 한가운데 갇힌 이들이 맞닥뜨린 첫 현실은,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잔혹함이었습니다. 영화는 생존이 단순한 본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뇌와 판단 속에서 내려지는 선택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살아남기 위해 먹어야만 했던 시체, 그 결정을 둘러싼 갈등은 생존이라는 단어에 인간의 윤리와 감정이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고립된 환경에서 이들은 공동체를 이룹니다.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죽어간 친구들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애씁니다. 영화는 단순한 공포와 처절함만을 보여주지 않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연대, 책임, 기억이라는 인간적인 감정을 세심하게 그려냅니다.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인간적이라는 역설을 전합니다.
많은 이들이 죽고, 살아남은 자들은 그 죽음을 통해 삶을 이어갑니다. 누군가의 몸은 누군가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식량이 되지만, 영화는 이를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죽음을 존중하고 기념하는 태도로 접근합니다. 죽은 자들은 단순히 ‘먹힌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에게 삶을 남겨준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영화는 그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와 무게를 더 깊게 전달합니다.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상황에서, 이들이 버틸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생존의 의지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책임, 가족에게 돌아가겠다는 약속, 친구를 살리겠다는 다짐 같은 인간적인 동기들이 이들을 지탱합니다. 영화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내면에서 끌어올리는 정신적인 힘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를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J.A. 바요나는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풀어내면서도, 극적인 연출을 절제합니다. 극한의 추위와 고산의 공포를 보여주되, 감정의 과잉 없이 인물의 시선과 감정에 천천히 따라가는 방식을 택합니다. 드론 촬영이나 광활한 설원의 사용은 오히려 이들의 무기력함을 부각시키는 장치가 되고, 그 안에서 오로지 인간의 목소리와 눈빛만이 부각되는 순간들이 압도적인 몰입감을 만들어냅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모든 인물이 공동 주인공처럼 느껴집니다. 각각의 캐릭터가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고, 서로의 생존을 위해 작은 결정을 쌓아갑니다. 그중에서도 나레이터이자 실존 인물인 나도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점으로, 공동체의 윤리와 감정을 대변합니다. 각자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사회(Society)'를 만든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개개인의 서사보다는 함께 버텨낸 기억의 총체를 더 중요하게 다룹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먹먹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끝없이 피어나는 작은 연대의 따뜻함, 인간을 향한 존중, 그리고 생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감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쉽게 소비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는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복잡하고 숭고할 수 있는지를 조용히 증명하는 이야기입니다.